안녕하세요 자동차를 좋아 하는 야수비 입니다.이번에 소개할 자동차 럭셔리 브랜드는 많은 분들이 좋아 하는 독일 명품
브랜드 포르쉐가 되겠습니다.포르쉐가 지나온 역사에 대해서 포스팅 합니다.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 세계 제일을 꿈꾸다 럭셔리 브랜드 포르쉐 개요
독일 폭스바겐 그룹 산하의 프리미엄 자동차 제조사. 스포츠카, 슈퍼카 이외에도 세단, SUV 등을 생산한다.
포르쉐 911이 상징적인 모델이나 다름없지만, 정작 포르쉐를 지탱하는 모델은 SUV인 카이엔과 패스트백인 파나메라이다.[2]
독일어 발음은 ['pɔʁʃə]이며 #, 영국식 영어 발음은 ['pɔːʃ~'pɔːʃ.ə~'pɔːʃ.i]로서, 두 번째의 경우 [포ː시]에 가깝다. 미국식 발음으로는 중간의 'r'를 살린 ['pɔɹʃ~'pɔɹʃ.ə~'pɔɹʃ.i][3][4] 독일어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포르셰'라고 해야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법인을 설립할 때 포르쉐코리아라고 등록했기 때문에 정식 표기법은 포르쉐가 되었다
2. 세계 제일을 꿈꾸다 럭셔리 브랜드 포르쉐 특징
스포츠카 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편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4] 그럼에도 센터콘솔에서 몇 가지만 조작하면 바로 트랙에 뛰어들어도 괜찮을 정도로 세팅이 잘 되어 스포츠카로서의 본질을 잃은 것도 아니어서 수많은 매니아들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모터쇼 등에서 시트에 앉으면 착좌감부터가 어지간한 준대형차 급이며,[15] 포르쉐 측에서도 광고 등에서 이러한 점을 강조하는 편이다.#
특히 신형 992 카레라 모델의 리뷰를 보면 노멀 모드에서는 더더욱 승차감이 부드러워졌다는 평을 받는다. 진짜 세단급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는 데일리 스포츠 세단을 내세우는 포르쉐의 철학이 기술, 전자장비의 발달과 함께 세단[16]과 스포츠카의 균형을 현실로 만들어 낸듯 하며[17] 스포츠 또는 스포츠+ 모드를 적용하면 극강의 코너링 레이스카인 911이 되어 서킷을 지배하는 차로 변신한다는 것이 911이 왜 최고의 스포츠카인지 말해준다.
트림(Trim)이 정말 많다. 기본형[18]부터 시작해서 GTS, 터보[19] 등등의 이름들이 정말 많이 붙는데, 모델의 이름이 가장 긴 차량은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 스포츠 투리스모'[20]이다.
단종 트림은 마지막 모델을 기준으로 서술한다.
3. 세계 제일을 꿈꾸다 럭셔리 브랜드 포르쉐 일반사항
자동차계에 길이 남을 천재 공학박사 페르디난트 포르셰와 그의 아들 페리 포르셰가 1931년 설립 후 1948년 폭스바겐 비틀 기반의 스포츠카이자 포르쉐의 첫 번째 자동차인 포르쉐 356을 만들면서 시작하였다. 356의 별명이 "점프하는 개구리"였고 356 이후 포르쉐에서 나오는 차량들은 "개구리"라는 별명이 붙는다.
참고로 페르디난트는 히틀러 총통이 국민차 개발을 의뢰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원래 기계 쪽에서는 천재여서,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Mixte를 1899년에 만들기도 하였다. 구조적으로는 110년 뒤에 생산된 쉐보레 볼트나 아우디 A1 e-트론과 이미 비슷했다.[56] 여하간 이 때문에 폭스바겐과 포르쉐는 사실상 한 가문에 의해 창립된 가족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자서전 "CARS"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2차대전 중에는 자동차를 넘어서 중공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포르쉐에서 만든 VK 45.01(P)는 헨셀의 티거 1과 경합을 했고 티거 2와 야크트티거 개발 당시 포탑과 현가장치를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직접 설계를 했다. 나중에는 결코 깨지지 않을 기록의 초중전차인 마우스 전차를 만들었다.[57]
포르쉐의 전통 중 하나로, 일반적으로 키홀더가 핸들 오른쪽에 있는 다른 차량과는 달리, 포르쉐 차량들은 전통적으로 왼쪽에 위치한다. 초창기 자동차 레이싱은 운전자가 차량 밖에서 대기하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차량에 탑승하여 출발하는 형식이었는데,[58] 이때 왼손으로 차량의 시동 [59]을 걸며 오른손으로는 기어변속을 하며 바로 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레이싱 DNA를 현재까지 유지하는 중이다. 유구한 전통의 포르쉐만이 가능한 고집이다.
창립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2차대전 종전 후 전범으로 체포되어 1945년 12월부터 복역하고 1949년에 풀려난 뒤, 병을 얻어 1951년에 사망했다. 이후 그의 아들인 페리 포르쉐가 경영 전반에 뛰어들어 탁월한 경험과 경영 능력을 바탕으로 차츰 회사의 규모를 성장시켰다. 간판 차종인 911은 1963년 등장했다. 한동안 911 차체에 356의 4기통 엔진을 얹은 912를 팔기도 했고, 912의 뒤를 이어 911 아랫급 모델로 914를 폭스바겐과 함께 개발해 만들기도 했지만 많이 팔지는 못했다. 911의 후속 모델로 개발한 포르쉐 928도 있었지만 포르쉐에 그란투리스모 차량 하나를 추가시켰을 뿐 911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포르쉐가 만들어 성공한 차는 911 하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초 방만한 경영으로 회사를 말아먹을 뻔한 적이 있다. 결국 당시 대주주였던 폭스바겐이 경영에 개입해 간신히 구사일생했다. 이 시기에 포르쉐는 FR 레이아웃에 4기통 3,000 cc 쿠페 968을 생산하였는데, 이게 사실은 1976년에 나온 924를 발전시킨 944를 다시 한 번 발전시킨 차다. 즉 4기통 FR 라인업을 무려 20년이나 우려먹을 수밖에 없을 정도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1995년 출시 목표로 911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4도어 세단인 989를 만들려고 했으나, 개발비용 부담으로 가격이 치솟았고, 회사에 위기가 닥치며 엔지니어가 타 회사로 이적하는 바람에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버렸다. 이게 포르쉐의 흑역사들이다. 당시 만들려고 했던 989는 911에 문짝 2개가 늘어난 디자인으로 당시로서는 괴상하게 보였는데 나중에 '파나메라'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1990년대 포르쉐가 처했던 상황은 대한민국으로 치자면 IMF급으로 그야말로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셈이다. 포르쉐가 살아남기 위해 호구지책으로 만든 모델이 바로 박스터 (986)이다. 개발비를 절감하고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당시 개발중이던 수랭식 996 (결국 그 이전 모델인 993은 포르쉐 최후의 공랭식 911이 되었다)과 많은 부품을 공유하였는데, 이것은 상당한 논란을 불렀다. 또 포르쉐 차량의 외관 아이덴티티 중 하나인 개구리눈을 달걀프라이 모양으로 수정함으로써 팬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는 일도 일어났다.